/ □□□ 라고 합니다.
/ 여이 혜예요, 아이 해예요?
/ 원래는 여이 혜영인데, 별명은 아이 해영으로 지었어요.
/ 특이하다, 왜요?
그는 가끔 ‘해영’이 되어서, ‘혜영’ 인 채 전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는 혜영이며, 해영이며, 건축공학 전공자고, 글 짓는 여행자다.
자기소개를 할 일이 생길 때면 항상 ‘글 짓는 여행자’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하늘길이 막히기 전까지 여행에 미련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행을 다녔고, 많은 경험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쓰이는 글들을 모아서 책을 냈다.
원래부터 책을 쓰는 사람이 되길 꿈꿨던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여행자가 되기를 꿈꿨던 것도 아니고. 다가오는 길과 흐름에 몸을 싣고 다녀온 결과가 글 짓는 여행자로 돌아왔다. 한창 한국이 청년들의 해외 취업에 관심을 두던 시기, 그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쿠웨이트 한인 기업에 툭 떨궈져 있었다. 그 곳 사람들은 좋았고, 경제적으로도 그를 잘 챙겨줬다. 그리고 쿠웨이트의 경험은 이번엔 그를 유럽에 떨궈놓았다. 그 경험은 그를 – 에 떨궈놓고, 떨궈놓고, 떨궈놓고 … 혜영은 대기권에, 성층권에, 또 어딘가에 떠서 오락가락하는 기류를 느끼며
… 즐겼다!
혼자 떠나려는 계획은 없었지만 홀로 지나게 된 여행에서 돌아와 그는 글을 지었다.
/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나요?
/ 반복에서 벗어나 터닝포인트를 찾고 싶었는데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어요.
/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다녀와서 책을 낸 거면 굉장한 터닝포인트가 된 것 아니냐고.
/ 일리가 있구나 생각했죠.
음, 어쩌다 터닝포인트
그는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 잔운이 좋다고 한다. 유난히 자잘한 당첨이 잘 되는 사람. 청소년기에는 동방신기 음악방송에 간 적 있는데, 그냥 당첨되어서 갔다. 어쩌다 가게 된 쿠웨이트는 글 짓는 여행자라는 터닝포인트(라고 하자)로 돌아왔다. 요즘도 그렇다. 잃어버린 카메라를 찾게 되는 계기는 별거 아닌 낙서다. 언제 했는지도 모를 이름 낙서가 그가 카메라의 주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뭐 그러한 기억과 경험을 엮고 엮어서, 그는 스스로를 ‘될 놈 팔자’라고. 그렇게 말한다. 기회와 운과 대충 잘 될 거라는 믿음. 될 놈 팔자.
청년세대의 걱정 회오리가 난무하는 시대. ‘나’ 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란 사실 쉽지 않다. 침착하게 나를 믿는다. 유유자적 기다리며 커피를 한 잔 시켜 책을 읽다가, 누군가 디저트를 먹겠느냐고 물어오면 그때 정성껏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한 가지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눈을 반짝일 타이밍을 놓친다면 디저트는 녹아버린다. 녹지 않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건 분명 그의 재능이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기록된다. 부정적인 것들이 자극적이며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랫동안 괴롭히며 때로는 왜곡되기까지 한다.
이런 와중에, 희로애락을 경험과 행복이라는 단어로 다듬어 기록해두는 해영. 글 짓는 여행자인 동시에 삶을 짓는 여행자.
뭐, 이 또한 ‘어쩌다’일 수도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수도 있다.
몇 년 된 영수증, 학창시절의 편지, 학급문집, 유년기의 사진. 그가 수집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번에는 ‘왜 버리지 않아요?’ 보다는 어떻게 그렇게 잘 간직하고 있느냐고 물어야겠다.
영수증은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다. 증빙용도 아니고. 보통 책을 읽을 때 커피와 같이 무언가를 함께 사게 되어있다. 무조건 남는다. 그는 그것을 책갈피로 쓴다. 영수증에는 상호명, 사장님 이름, 주소와 금액, 날짜와 시간 … 보통 그런 것들이 쓰여있다. 책갈피로 쓰이는 영수증은 좋은 독후감이 된다. 책 종이 위에 빼곡하게 적힌 글자 사이 사이에는 그때 함께 즐겼던 것들의 기억이 묻는다.
학급문집과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들의 상태도 깨끗하다.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는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 친구들 보여주려구요!
그에게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요즘 관심사가 뭔가요?
그는 요즘 의정부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져, 의정부가 관심사라고 한다. 사실은 의정부를 뜨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의정부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부캐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라고. 아무튼, 뭐가 됐든 그가 의정부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 의정부여고에 현수막 걸리는 거요!
어떤 일로 걸리게 되는가는 상관없다. 그저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낸 고등학교에 현수막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는 그 이름을 모교에 남기고 싶은가보다. 아, 의정부는 떠나고 싶어도 의정부 여고에 이름은 걸리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 듯하다.
그렇게나 고이 기억하고 있는 나의 하이틴. 하이틴을 담고 있는 문서들.
그는 몇 년, 몇 십 년 후 그것이 정말 귀중한 추억거리로 남아 놀이가 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그는 ‘남는다’는 걸 애초에 전제하고 산다. 행동하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녹음을 하고 있고, 글을 쓰고 있고, 머리로,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다.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순간 한순간이 중하다. 이 모든 것들은 나중에 남아서 나를, 내 친구들을 웃게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가 전제하는 어제와 오늘, 내일의 ‘남겨짐’은 긍정의 힘이 되어서
- 또 다른 문장을 확신할 수 있게 한다.
유유자적,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 ‘될 놈 팔자’ 같은 거.
멋진 아줌마, 귀여운 할머니!
그거면 끝이다.